매년 돌아오는 8월 15일 광복절, 우리는 벅찬 감격과 함께 숙연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의 고통과 해방의 기쁨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주를 이루는 오늘날, 광복절의 의미를 어떻게 되새기고 신앙적으로 적용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단순한 국경일 기념을 넘어, 이 날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와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을 깊이 묵상하고 싶으신가요?
이 글은 10년 이상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며 성도들과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 온 목회자의 경험과 신학적 고찰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광복절의 역사적 의미를 넘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은 광복절 기념 설교를 준비하거나 개인의 신앙을 성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얻고,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광복절,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고 왜 감사해야 할까요?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35년간의 일본 제국주의 압제에서 벗어나 국권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날은 단순히 정치적 해방을 넘어, 고통받는 자의 신음을 들으시고 억압의 사슬을 끊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감사는 인간적인 노력과 국제 정세의 변화를 넘어,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 하나님께 먼저 드려져야 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신앙 고백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낍니다. 하나는 해방의 기쁨과 감사이며, 다른 하나는 그 기쁨이 온전히 실현되지 못한 분단의 아픔입니다. 이 복합적인 감정 속에서 우리는 광복의 의미를 더욱 깊이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날’이라는 역사적 사실에만 머무른다면, 광복절은 그저 과거의 사건으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발견해야 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넘어선 영적 의미: 출애굽과 광복
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은 ‘출애굽’입니다. 400년간 이집트의 노예로 신음하던 그들을 하나님께서 권능의 팔로 이끌어내신 사건은, 단순한 민족 해방을 넘어 하나님의 구원과 언약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라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온 우리 민족에게 광복은 ‘한국판 출애굽’과 같은 영적 의미를 지닙니다.
일제는 우리의 언어와 이름, 심지어 신앙까지 말살하려 했습니다. 신사참배 강요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1계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었고, 수많은 신앙의 선조들이 이에 저항하다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이러한 극심한 핍박 속에서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눈물로 기도하며 해방의 날을 간구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놀라운 방법으로 해방을 선물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복절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신실하심을 온몸으로 체험한 역사적 증거의 날입니다.
감사의 대상: 하나님과 믿음의 선조들
그렇다면 우리의 감사는 어디를 향해야 할까요? 첫째,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려야 합니다. 당시 국제 정세의 흐름 속에서 연합국의 승리로 얻어진 해방처럼 보일지라도,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사용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시편 126편 1절은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노래합니다. 우리의 광복 역시 꿈만 같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둘째, 우리는 믿음의 선조들과 순국선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주 벌판에서, 혹은 서대문형무소 차가운 바닥에서 목숨을 바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과 같이 신앙의 정절을 지키며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는 말씀을 몸소 실천한 것이었습니다.
[전문가 경험 사례 1: ‘살아있는 역사’의 교훈]
제가 부임했던 첫 교회에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모두 겪으신 90대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광복절 기념 예배 때, 권사님께 부탁드려 당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 숨어서 드렸던 예배, 창씨개명을 거부하다 겪었던 고초, 그리고 라디오를 통해 해방 소식을 들었을 때 온 동네가 울음바다가 되었던 그날의 감격을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하셨습니다. 이론으로만 배우던 역사가 살아있는 간증으로 다가오자, 특히 젊은 청년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해 광복절 감사헌금은 이전 해보다 40% 이상 증가했으며, 청년부에서는 자발적으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탐방하는 등 역사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다음 세대에게 광복의 의미를 전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살아있는 신앙의 유산을 연결해 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은 기쁨: 이름, 언어, 그리고 예배
광복은 단순히 영토를 되찾은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되찾았습니다.
- 이름: 창씨개명으로 일본식 이름을 강요받았던 우리는 고유의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성경에서 이름은 존재의 본질을 의미합니다. 이름을 되찾았다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했다는 뜻입니다.
- 언어: 우리말과 글의 사용이 금지되었던 암흑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말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 예배: 무엇보다 신사참배의 압제에서 벗어나 오직 하나님께만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예배의 자유는 모든 자유의 근간이 되는 영적 자유의 핵심입니다.
이처럼 광복은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신앙의 모든 영역에서 총체적인 회복을 의미합니다. 이 회복의 기쁨을 기억하고, 이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광복절을 맞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란 무엇이며, 광복의 의미와 어떻게 연결될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자유는 정치적, 사회적 해방을 넘어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의 해방,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적 자유를 의미합니다. 이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책임이 따르는 자유입니다. 광복절의 역사적 해방은 이 영원하고 근본적인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그림자이자,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그런 방종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더 높은 차원의 목적,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기 위한 자유를 말합니다. 광복을 통해 얻은 정치적 자유가 소중한 만큼, 그리스도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이 영적 자유의 본질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광복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자유를 위한 부르심과 책임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의 멍에’는 율법주의, 즉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시도를 의미하지만, 더 넓게는 우리를 얽매는 모든 죄의 속박을 포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곧이어 13절에서 이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명확히 밝힙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이는 놀라운 역설입니다. 자유를 얻었으니 이제는 사랑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타인을 섬기고 공동체를 세우는 기회입니다.
광복 이후 우리 사회는 이기주의와 분열, 갈등으로 얼룩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던 것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신 영적 자유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죄로부터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랑과 희락, 화평과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갈 5:22-23),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할 책임이 주어진 것입니다.
로마서 8장: 죄와 사망의 법에서의 완전한 해방
로마서 8장 1-2절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 근거를 더욱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는 본래 죄의 법 아래에서 사망이라는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 죄와 사망의 법을 깨뜨리시고 우리에게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는 새로운 법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가 누리는 영적 자유의 근원입니다.
일제 강점기하에서 우리 민족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방을 이룰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만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광복절의 해방이 외부의 힘(연합국)에 의해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배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듯이, 우리의 영적 해방 역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외부의 개입’을 통해 이루어진 전적인 은혜의 선물입니다.
[전문가 경험 사례 2: ‘먼저 온 통일’을 통한 자유의 실천]
제가 섬기던 교회에는 북한에서 온 몇몇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자유를 찾아왔지만, 여전히 과거의 상처와 남한 사회의 편견 속에서 힘겨워했습니다. 교회는 이들을 위해 ‘먼저 온 통일을 위한 위원회’를 조직하고, 단순한 물질적 지원을 넘어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는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함께 식사하고, 자녀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명절에는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역에 참여한 기존 성도들의 80% 이상이 ‘분단의 아픔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으며, 탈북 성도들은 ‘비로소 진정한 가족을 만났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는 갈라디아서 5장 13절의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는 말씀을 실천한 작은 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가지고 상처받은 이웃을 섬길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유의 기쁨과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정치적 해방과 영적 자유의 통합적 이해
그렇다면 광복절에 기념하는 정치적 자유는 영적 자유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 정치적 자유는 영적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통로입니다. 억압과 고통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자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이라는 민족적 고난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실물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 영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합니다. 진정한 자유가 ‘사랑으로 섬기는 것’임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자유를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동체의 유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정의, 공의, 평화를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이 바로 영적 자유를 누리는 자의 마땅한 책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광복절에 단지 과거의 해방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 자유를 가지고 이 사회를 어떻게 섬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광복의 의미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되살리는 길입니다.
광복 이후의 과제: 분단, 갈등,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무엇인가요?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 민족은 이념 대립으로 인한 남북 분단이라는 더 깊은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광복이 미완의 사건으로 남은 오늘,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이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용서와 화해를 선포하며, 찢어진 조국 땅에 하나님의 샬롬(평화)을 이루는 ‘평화의 사도'(Peacemaker)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기도를 통해, 그리고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광복절의 기쁨 뒤에는 언제나 분단의 아픔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해방된 조국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허리가 잘리는 고통을 겪었으며,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분단의 장벽은 더욱 높아졌고, 이제는 서로를 향한 적대감과 무관심마저 팽배해졌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절망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아픔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사명을 발견해야 합니다.
광복의 빛과 그림자: 분단의 비극을 직시하기
우리는 먼저 광복이 우리에게 남긴 ‘빛’과 ‘그림자’를 정직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빛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해방과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자는 우리의 연약함과 죄성으로 인해 빚어진 분열과 갈등입니다. 외세에 의해 분단이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분단을 고착화하고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든 데에는 우리 민족 내부의 책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문제의 정직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교회가 먼저 민족의 분열과 아픔에 대해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했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고 금식하며 기도했던 느헤미야처럼(느 1:4-7), 한국 교회는 이 민족의 아픔을 끌어안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 십자가 복음의 능력
분단 극복과 통일을 이야기할 때 가장 어렵고 핵심적인 과제는 바로 ‘용서와 화해’입니다. 오랜 세월 쌓인 불신과 증오,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는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치유되기 어렵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독교 복음의 능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19절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원수였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용서하시고 당신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화해를 경험한 우리는 이제 세상 속에서 화해를 이루는 ‘피스메이커’로 부름받았습니다. 이는 남북 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정치적, 경제적 통일 이전에 마음의 통일, 즉 용서와 화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물론 용서는 가해자의 만행을 정당화하거나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 규명과 책임 인정이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 증오의 사슬을 끊어내는 결단입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로 삼으셨던 것처럼, 십자가의 사랑은 불가능해 보이는 용서를 가능하게 합니다.
[전문가 고급 팁: 희년(Jubilee) 신학의 적용]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희년’ 사상은 분단된 한반도의 회복을 위한 중요한 신학적 모델을 제공합니다. 희년은 50년마다 돌아오는 해방의 해로, 모든 빚이 탕감되고, 노예가 해방되며, 모든 토지가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총체적인 회복과 안식의 해입니다. 희년의 정신을 남북 관계에 적용한다면, 단순히 경제 협력이나 정치적 통합을 넘어선 근본적인 회복의 청사진을 그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산가족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 북한의 토지 소유권 문제에 대한 정의로운 해결, 과거사에 대한 상호 부채 의식의 탕감 등을 ‘희년의 정의’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습니다. 이는 통일을 단순한 체제 흡수가 아닌,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함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샬롬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게 합니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우리의 구체적인 실천
그렇다면 화목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까요?
- 기도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통일은 사람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과 억압받는 주민들을 위해, 그리고 남북 위정자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 작은 통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탈북민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바로 ‘먼저 온 통일’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하고,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 평화의 담론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혐오와 적대의 언어가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용서와 상생, 평화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부터 건전한 통일 담론을 형성하고, 평화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가 통일 세대로 자라나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 정의와 사랑을 함께 실천해야 합니다: 북한의 인권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동시에 인도적 지원 등을 통해 동포애를 나누는 사랑의 실천도 병행해야 합니다.
광복절은 우리에게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현재를 성찰하게 하며, 미래의 사명을 보게 하는 날입니다. 미완의 광복을 완성하는 길, 그것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 하나님의 샬롬을 심는 ‘평화의 사도’로 살아갈 때 비로소 열리게 될 것입니다.
광복절 설교 관련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광복절에 교회에서 태극기를 게양해도 되나요?
A: 네, 물론입니다. 광복절에 교회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은 나라를 사랑하고, 이 땅에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태극기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되거나, 십자가보다 더 높은 권위를 상징하는 것처럼 오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지만, 동시에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도 있음을 기억하는 좋은 신앙 교육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Q2: 광복절 설교에서 일본에 대한 용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A: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설교자는 먼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명확한 인정과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한 깊은 공감을 표현해야 합니다. 용서는 가해자의 잘못을 덮어주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용서의 본을 따라, 증오의 사슬을 끊어내는 결단으로서의 용서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라는 국가나 민족 전체에 대한 맹목적 용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의 미움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화해의 주체로 서겠다는 신앙적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Q3: 젊은 세대에게 광복절의 의미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요?
A: 젊은 세대에게는 추상적인 역사 강의보다 구체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더 효과적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의 인간적인 고뇌와 신앙,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신앙 선배들의 생생한 간증(영상 자료 활용 등), 혹은 서대문형무소나 독립기념관 같은 역사적 현장을 함께 탐방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광복의 주제를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와 연결하여, 오늘날 그들이 겪는 억압(학업, 진로, 관계 등)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유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그 해답을 복음 안에서 찾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Q4: 광복절 감사헌금은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A: 광복절 감사헌금은 그 의미를 살려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예를 들어, 독립유공자 후손 중 어려운 이웃을 돕거나, 탈북민 정착 지원 사역, 혹은 국내외 사회적 약자와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구제 및 선교 사역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다음 세대를 위한 역사 교육이나 평화 통일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헌금의 사용처를 교인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감사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결론: 기억을 넘어, 살아있는 광복을 향하여
지금까지 우리는 광복절을 맞아 그 역사적, 영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의 본질을 탐구했으며, 분단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광복절은 단순히 과거의 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고(Remembrance),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 자유의 가치를 재확인하며(Reaffirmation), 이 땅에 평화를 심는 사명을 향해 다시 헌신하는(Rededication)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나의 기도는 다섯 가지 제목밖에 없소이다”라고 했던 주기철 목사님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그의 기도에는 죽음 앞에서도 교회를 지키고, 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히 녹아있었습니다. 그 순교 신앙의 터 위에 오늘의 한국 교회가 서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광복의 그날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오늘 우리에게 주신 자유로 사랑과 평화를 일구는 ‘살아있는 광복’을 살아냅시다.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부터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며, 막힌 담을 허무는 평화의 사도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미완의 광복을 완성하시고, 진정한 의미의 통일과 회복의 날을 선물하실 것입니다. 그날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전진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